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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보문고가 출시한 전자책 단말기 ‘샘(sam)’. 연필보다 얇고, 커피 한 잔보다 가벼워 휴대가 용이하며, 사용자의 독서 취향과 패턴을 분석해주는 ‘독서노트’, 전문가와 출판사의 추천서비스 ‘쌤통’ 등의 서비스가 제공된다. 하지만 샘에 도입된 약정 요금제에 대한 출판계의 반발이 거세 콘텐츠 공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 |
교보문고, eBook 회원제 서비스 ‘샘’ 출시교보문고에서 내놓은 회원제 전자책 서비스 ‘샘(sam)’을 둘러싸고 출판계가 떠들썩하다. 샘은 국내 최초로 전자책 분야에 ‘구매’가 아니라 ‘대여’를 도입한 서비스다. 낱권을 구매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약정 회원가입을 통해 매월 5, 7, 12권씩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샘은 아이리버와 손잡고 개발한 교보문고 전자책 전용 단말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교보문고 허정도 대표는 지난 2월 20일 경기도 고양시 전시장 킨텍스에서 샘 출시 콘퍼런스를 갖고 “샘을 내놓는 건 전자책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 독서인구를 늘리는 데 목적이 있다”며 “위기에 빠진 종이책 시장을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샘이 독자와 출판사, 서점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이라고 확신했다. 독자는 합리적 가격으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출판사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수익을 발견하고, 서점은 새로운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출판계, 한목소리로 비판그러나 샘은 즉시 출판계의 반발에 부딪혔다. 한국출판인회의(회장 박은주 김영사 대표)는 ‘출판 생태계 위협하는 회원제 전자책서비스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강하게 반대했다. 성명은 “이 서비스가 시행되면 동일한 전자책 사이에 이용 형태에 따라 현격한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며 “이는 도서정가제를 사실적으로 무력화하고, 전자출판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샘을 통해 볼 수 있는 전자책은 250개 출판사의 2만여종. 21세기북스, 웅진출판, 자음과모음이 교보문고의 대표적인 협력사다. 교보문고 박미영 디지털콘텐츠소싱팀장은 주간조선과 만나 “샘은 웬만한 신간과 베스트셀러는 갖추고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협력사를 제외한 출판계의 생각은 다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주간조선과 전화통화에서 “샘은 성공하기 힘들어 보인다. 대표적 출판사들이 콘텐츠를 내놓지 않는데 어떻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교보문고와 출판사 측의 대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전자책 사업을 두고 수년 전부터 대립했다. 지난해까지 교보와 출판계 대립의 원인은 DRM(Digital Rights Management·디지털저작권 관리)이었다. DRM은 전자책의 투명한 관리와 결제를 위한 기술과 서비스로, 종이책의 판권 인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교보 측과 KPC(한국출판콘텐츠·김영사, 시공사, 사계절 등 60개의 대형출판사가 출자해 만든 전자책 제작 대행사)가 서로 자신의 DRM을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다가 지난해 12월 양측의 DRM을 동시에 사용하는 데에 합의했었다. 교보문고 박미영 팀장은 “이르면 올 4월부터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출판계와 교보문고가 합의한 데에는 지난해 주간조선 기사(‘교보문고-대형출판사들 전자책 손잡나’ 5월 14일자)가 단초가 됐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진영균씨는 “주간조선의 기사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알게 됐다. 양측이 합의점을 도출해 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갈등의 핵심은 요금제샘을 둘러싼 양측 갈등의 핵심은 요금제다.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내고 가입하면 책의 정가에 관계없이 정해진 종수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다섯 권을 볼 수 있는 회원제라면, 2만원짜리 다섯 권이든 5000원짜리 다섯 권이든 제한이 없다. 샘 서비스 공간에서는 원서의 정가가 무의미해진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성명서에서 “이번 회원제 서비스는 전자출판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며 “출판계 전체가 완전 도서정가제 도입을 출판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천명하고 있는 작금의 움직임과도 배치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보문고 박미영 팀장은 “구매가 아니라 대여의 개념이기 때문에 도서정가제와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도서정가제 확립을 위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이 얼마 전 발의됐다. 지난 1월 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재천 의원(민주통합당)이 발의한 이 개정안은 신간 도서에만 적용됐던 도서정가제를 모든 도서에 적용하자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도서 유형과 발행 시기에 관계없이 모든 도서를 19%까지만 할인이 가능하다. 전자책도 예외가 아니다.
출판계는 전자책 대여서비스가 시행되면 도서 시장 전체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음원 시장에 회원제 정액서비스가 들어오면서 음반 시장이 내리막길을 걸었다”면서 “무료 정보가 횡행하면 지식노동자들이 빈민으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내가 2099년까지 살아있다면 ‘21세기 출판은 광대한 바다에서 떠도는 무료 정보와의 투쟁의 역사다’라고 기록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정부기관인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 또한 샘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그는 “이제까지 쓴소리를 잘 안 해왔는데 이번 교보의 행보는 다급한 결정이었다고 본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자책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교보의 방향은 맞다. 하지만 샘 서비스가 그 방향과 일치하는 모델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높아도 성공하기 힘든데 출판사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일방적인 서비스를 강요하는데 어떻게 성공하겠나. ‘조건에 맞는 출판사만 들어와라’ 식이 아니라 수용 가능한 제안의 폭을 넓혔어야 했다. 교보와 출판사는 운명공동체다. 지속 재생산 가능한 공동의 우물을 함께 파야 한다.”
합의점 찾지 못한 채 교보가 밀어붙여교보가 샘 출시 이전에 출판계와 대화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샘을 준비하면서 출판인회의의 회원들로 구성된 KPC 측과 만나 논의를 했다. 그러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신경렬 KPC 대표(더난출판 대표)는 “출판인회의 측에서는 교보의 회원제 서비스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교보는 왜 밀어붙였을까. 교보의 논리는 세 가지다. 하나는 전자책 시장 자체를 키우겠다는 것. 박미영 팀장은 “회원제 서비스는 미리 지불을 해놓기 때문에 책을 훨씬 많이 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헬스클럽에 가입하면 돈이 아까워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또 하나는 아마존닷컴이나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진출에 대한 위기감이다. 아마존닷컴은 세계 8개국에 자회사를 설립한 미국의 초대형 온라인 유통업체. 인터넷 서점으로 시작했다. 아마존닷컴이 지난해 11월 일본에 공식 상륙하면서 조급함이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구글 또한 국내 전자책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구글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디지털도서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세계 곳곳에서 각 국가와 마찰을 빚고 있어 잠시 주춤한 상황이지만 구글북스를 통해 전자책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9월 아시아에서 최초로 한국에서 구글의 전자책 사업을 개시했다. 웅진출판, 21세기북스, 대교출판이 이에 참여했다.
세 번째는 불법복제 문제다. 전자책이 고가를 고집할 경우 음원 시장이나 영화 시장처첨 불법복제 전자책이 횡행할 것이라는 논리다. 장애인용 전자도서를 만들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입력한 파일이 불법 유출된 경우가 많다. 프랑스의 경우 불법복제 전자책 문제가 심각하다. 2011년 프랑스 베스트셀러의 합법적인 전자책 제작률(33%)이 불법복제 전자책(36%)보다 낮았다.
독일은 서점과 출판사의 연합체 결성교보문고의 전자책 단말기 출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에 삼성과 손잡고 출시한 ‘sne-50k’를 비롯해 2011년 ‘교보 e리더’, 2012년 ‘스토리 K’를 출시했다. 경영 성과는 매번 적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보는 단말기를 포함한 전자책 분야를 더욱 넓히는 분위기다. 지난해 5월에는 창사 30년 이래 최대 규모의 조직개편을 통해 전자책 부문의 인력을 대폭 강화했다. 박미영 팀장은 “전자책 단말기 사업이 당장 마이너스라고 포기할 수는 없다.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가 단말기 사업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통계들이 많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전자책 단말기 보유자가 전자책을 가장 자주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태블릿PC, 컴퓨터·노트북, 스마트폰 보유자 순이다. 미국 아마존닷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것도 추동의 원인이 됐다. 교보의 이번 회원제 서비스 역시 아마존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 출판 전문가들은 한국의 전자책 단말기 시장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이다. 미국 시장과 우리의 전자책 환경은 여러모로 다르다고 지적한다. 미국인은 종이질이 나쁜 ‘페이퍼북’에 익숙해 지질이 떨어지는 느낌인 킨들 역시 잘 받아들이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종이질이 좋은 책에 익숙해 전자책 단말기의 거친 지질 느낌을 잘 수용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출판사의 숫자와 크기도 변수다. 미국은 대형 출판사 몇 곳이 시장의 70~80%를 장악하고, 일본 역시 몇십 개의 출판사가 시장을 장악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영세 출판사가 수천 개다. 전자책 콘텐츠를 한곳에 모으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교보문고와 출판업계 양측은 전자책이 대세라는 데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불협화음을 종종 내 왔다. 서점과 출판사는 공생관계다. 독일에는 서점과 출판사의 연합체가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의 말이다.
“전자책 시장에는 정답이 없다. 변화 중인 시장 환경에서는 적절한 지점을 찾아서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조사와 마케팅도 함께 해야 한다. 동업자들끼리 집안싸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결만 하면 양쪽 모두 손해다. 교보 측은 출판사가 받아들일 만한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출판업계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교보 측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전 세계 전자책 시장 동향
“전자책이 전체 출판시장을 키울 것”
국내외 전자책 시장은 한 해가 다르게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자책 시장의 성장세가 가장 빠른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미국인 25%가 전자책으로 독서를 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같은 기간 종이책을 읽은 미국인은 5%가 감소했다. 또한 미국의 리서치업체 WGA(Wilkofsky Gruen Associates)의 조사에 의하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종이책 시장은 2.3% 감소하는 반면 전자책 시장은 30.3%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주목할 부분은 종이책과 전자책을 포함한 출판시장 전체 성장률이다. 종이책 시장 성장률의 둔화 속도에 비해 전자책 시장 성장률이 매우 가파르다. WGA는 2012년 이후 4년간 출판시장 전체 성장률을 0.6%로 내다봤다. 전자책이 독서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새로운 독서 시장을 창출할 것이라는 얘기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교보문고 독서경영연구소가 내놓은 ‘2011 직장인 독서경영실태조사’에 의하면 전자책 독서량은 지난 한 해 평균 읽은 책 16권 중 2권으로 조사됐다. 여덟 명 중 한 명은 전자책으로 독서를 했다는 통계다. 전자책 독서량이 늘면서 파울루 코엘류의 인기소설 ‘브리다’는 전자책 출시 1년 만에 1만부 이상 팔렸다. 열린책들이 전자책으로 출시한 ‘세계문학’ 앱 중 ‘그리스인 조르바’는 출시 한 달 만에 다운 건수가 1만건에 육박한다.
BISG의 조사에 의하면 전자책이 종이출판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인식과 달리 전자책 선호자 중 종이책 구매 중단을 밝힌 응답자는 적었다. 오히려 90% 이상이 지속적인 인쇄본 구매의사를 밝혔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저서 ‘새로운 책의 시대’에서 이렇게 말한다.
“책은 언제나 스스로 변하는 ‘재매개화’ 과정을 걸어왔다. 새로 등장한 뉴미디어인 전자책은 올드미디어인 종이책의 자양분을 먹고 자라고, 종이책은 전자책의 등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신만의 장점을 찾아내기에 돌입했다. 전자책이 종이책의 장점을 무수히 도입하는 것은 그래서다. 두 미디어는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며 새로운 책의 세계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가고 있다.” |
/ 김민희 기자